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기태(1969)/선수 경력 (문단 편집) == [[SK 와이번스]] 시절 == ||<#182132> [[KBO 골든글러브|[[파일:KBO 골든글러브 로고.svg|height=40]]]] [br] [[틀:KBO 골든글러브/지명타자|'''{{{#b58a5d KBO 골든글러브}}} {{{#ffffff 지명타자 부문 수상자 (2004)}}}''']] || [[파일:external/www.sksports.net/Large_2004052323335556834_7108.jpg]] [[파일:external/file2.nocutnews.co.kr/25084500000_60400020.jpg]] 2001년 시즌 종료 후 삼성에서 설 자리를 잃은 뒤 트레이드 시장에 나오자 [[SK 와이번스]], [[KIA 타이거즈]], [[현대 유니콘스]], [[LG 트윈스]]가 김기태를 얻으려고 트레이드를 시도했고, 결국 6:2 현금 트레이드로 SK 유니폼을 입게 된다.[* KIA는 [[오철민]], [[최영완(야구선수)|최영완]]에 현금을 더 얹어서 준다했고, 결국 SK가 엄청난 현금으로 트레이드에 성공했다.] 애석하게도 [[김기태(1969)|김기태]]는 예전의 김기태가 아니었다. 2002~2003년은 많은 타석을 제공받으면서 홈런수도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, 2004년 SK에서 126경기에 출장, 3할에 복귀[* 작가 [[김은식]]의 칼럼에 따르면 김기태 하면 장타력 있는 타자라는 생각으로 수비수들이 후진수비하는 것을 역이용, 컨택에 중점을 둔 간결한 스윙으로 타격을 바꾸면서 3할 복귀에 성공했다고 한다.]하며 [[지명타자]] 부문 [[KBO 골든글러브]]를 수상하며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. 그러나 2005년 시즌에는 부상으로 1군 54경기에 그쳤고, 타율 또한 2할 5리의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고 은퇴한다. 동갑이면서 1년 후배인 [[양준혁]]이 30대 후반에 나이에도 3할을 치며 42세까지 롱런해서 비교되긴 하는데, 사실 이건 양준혁이 터무니없이 오래 버틴 거고 김기태도 37세에 은퇴면 지금 기준으로도 그다지 이르지 않은 은퇴로 충분히 할 만큼 했다. 여담으로 마지막 시즌 중 무릎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이었는데, 몸 상태 체크를 위해 당시 같은 팀 소속이었던 [[신승현]]과 라이브 배팅 훈련을 했다고 한다. 당시 [[김원형]]과 선발 원투펀치로 활약하면서 절정의 기량을 보이던 [[신승현]]의 강속구를 받아쳐 좌익선상으로 날아가는 빨래줄 안타를 쳤는데, 이로 인해 복귀를 서두르다 일주일 만에 부상을 당하면서 저조한 성적을 기록해 은퇴의 단초가 되었다 [[http://sports.news.naver.com/sports/index.nhn?category=kbo&ctg=news&mod=read&office_id=111&article_id=0000358896|회고한 바 있다.]][* 그 뒤 [[신승현]]과 마운드에서 재회하게 되는 데에는 8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였다. 2013년 FA로 [[KIA 타이거즈]]로 이적한 [[이대형]]의 보상 선수로 [[신승현]]이 선택되면서 [[LG 트윈스]]로 이적하게 된 것. SK 시절에는 선후배 관계였던 두 인물이 짧게나마 감독, 선수의 관계로써 재회하였다.그러나 김기태가 고른 신승현은 LG에서 아무런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채 2군에서만 맴돌았고, 김기태가 강력하게 요청해서 2014 시즌을 앞두고 야심차게 데려온 [[김선우(1977)|김선우]]와 [[임재철]]도 팀에서 빅똥만 싼채 둘다 2014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